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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 다다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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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과 모자람過猶不及
흔히 과유불급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뜻으로 말하지만, 본래는 ‘지나침이나 모자람이나 같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공자와 제자의 어떤 인물평에 관한 문답에서 공자의 결론이 사회 일반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공자의 결론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이다.

지나침은 화를 부르고 모자람은 불만을 가져온다. 그런데 사람은 대체로 모자람은 알아도 지나침은 스스로 알기 어렵다. 때문에 지나친 것 보다는 차라리 모자라는 것이 낫다고 가르쳐 지나침을 경계하려는 뜻일 것이나 그렇다고 모자라는 것도 긍정적일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모자람은 여러 면에서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즉 중용을 지향해야 하겠으나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多多益善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오래 전부터 다다익선,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그러한가? 더구나 너무 많아도 좋은 것일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에 누구에게나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돈이나 재물일 것이다. 돈이나 재물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너무 많은 돈 또는 재물이 과연 누구에게나 좋은 것, 즉 선일까?

돈과 재물은 수단이요 도구다. 수단은 차치하고 도구는 소유자가 그것을 다룰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또 목적이나 필요에 따라서 크기나 양이 다를 수 있다. 이 크기나 양이 어떤 이유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 도구는 소유자에게 선일까? 아마도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多多가 선만은 아닐 수 있는 건 돈이나 재물만은 아니다. 일일이 예를 들고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에 의한 지구의 여러 가지 문제적 상태 또한 어쩌면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일 것이다.

과유불급과 다다익선을 관계 지어 볼 때 둘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는 않지만 삶에서 묘한 대비를 이루는 관계를 볼 수 있다. 전자는, 비록 뜻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경계로 쓰이고 후자는 권장으로 쓰인다. 그래서인지, 경계야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다다익선을 좆는다. 그런데다 사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지라고 권하고 유혹한다. 우리는 또 그래야할 것 같아서, 그러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 적거나 작으면 못난 것 같아서…… 그래서 가지려고 한다. 많이 가지려고한다. 더 많이 가지려고한다. 그러면서 불안해하고 힘들어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서 오히려 모자란 곳(오지 또는 저개발지역)에서 소박한 평화나 소위 힐링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멋진 풍경화를 보듯 할 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문제는 소유인데, 알다시피 무언가를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갖으려면 먼저 주어야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더 갖는 게 어렵지 않지만,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은 더 갖기 어려우므로 힘들고 괴롭다. 그리고 세상은 후자가 많다.

理想은 지나침을 경계하며 부끄럽지 않은 수단으로 모자람을 채우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불만스러워하고 불안해하며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서 다다익선을 외치며 허둥대고 있지는 않은지 때로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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