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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秒), 초(初), 초(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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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생각을 온전히 글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기자의 심경을 잘 투영하고 있는 ‘초’라는 한 단어를 꼽아 제목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S동 211호는 여러 말들이 쏟아지는 코너다. 그 쏟아지는 말들을 각각 다른 의미의 ‘초’를 통해 글로 담아냈다. 쉽게 쓴 글이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쑥스럽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글은 기자의 진심을 담은 글이다.


  초(秒): 분초. 신문사에서 시간 엄수는 중요한 덕목이다. 기사 마감을 제시간에 하지 못하면 모두가 곤란해진다. 이전까지 기자는 10분 정도는 봐주는 일명 '코리안 타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위해 보낸 시간을 생각하니, 기자들의 글을 존중하는 만큼 철저하게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문사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시간의 다른 개념은 순식간이다. 어느덧 기자 생활도 햇수로 1년이 넘었다. 쉼 없이 달려왔고 그동안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동안의 시간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글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저 이따금 동기들과 맥주 한 잔씩 마시며 기자로서의 처음을 얘기하곤 할 뿐이다.


  초(初): 처음. 과거는 미화되고 추억처럼 남으려 한다. 기자로서의 첫 순간을 각색 없이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기자는 아직 오지 않은, '처음’ 겪게 될 끝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기자에겐 무언가를 처음 했던 기억보다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했던 기억이 더욱 남곤 한다. 학기 마지막 기사, 선배들과의 마지막 인사, 동료들과의 마지막 말. 쉽게 잊혀 지지 않는 마지막이다. 기자 생활을 하며 기다렸던 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막막했다. 반대로 끝에서 볼 기자 생활은 어떠할까. 미화되고 우스워진다. 그땐 그랬지 하며 웃으며 넘길 일인데 처음에는 그걸 알지 못한다. 다만, 끝을 모르기에 지금의 일, 관계가 소중하고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잡고 살아간다. 때론 그것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냐는 물음에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고 되묻기도 한다. 그렇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끝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끝을 봐왔다. 언제나 기자가 바라본 끝에는 슬픔과 아쉬움만이 남아있었다. 언젠가 기자에게도 기자로서의 끝이 온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끝에는 후회와 슬픔을 이겨낸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선 기자가 극복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초(超): 뛰어넘다. 기자 생활은 기자 자신을 뛰어넘는 일의 연속이다. 동기 기자와 선·후배와의 관계, 인터뷰이와의 관계, 또 글과의 관계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다. 기자란 직책을 벗고 단지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렇지만 딱 하나 기자로서 기자가 아닌 뛰어넘고 싶은 대상이 있다. 독자와의 관계이다. 문득 스스로를 뛰어넘다 보면 왜 넘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결국, 스스로를 넘어서까지 기사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독자를 위해 존재한다. 매주 화요일 발간되는 신문들이 건물에 쌓여 있는 걸 보면 설렌다. 그렇지만 작업 용도로 또는 바닥에 앉기 위해 사용되는 신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독자들에 대한 서운함보다 더 나은 기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아쉬움의 아픔이다. 남은 3학기의 기자생활 동안 독자들과의 관계를 뛰어넘기 위해 기자는 스스로를 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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