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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일 놈의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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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쓰기 전, 기자는 우선 다른 기자들이 쓴 S동 211호를 읽어보았다. 다들 참 맛깔나고 재미있게 신문사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자 또한 얄팍한 어휘지식을 총동원해 그럴듯하게 신문사를 칭찬해보려 하였지만 아무리 잘 써보려고 해도 글은 도통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지난 1년간 기자가 겪은 신문사는 말 그대로 ‘이 죽일 놈의 신문사’였기 때문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기자는 이참에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신문사 욕이나 해볼까 한다. 설마하니 신문사 욕 좀 했다고 죽이기야 하겠는가.


  신문사를 욕하기에 앞서, 공평하게 기자 스스로의 허물부터 밝히고 들어가겠다. 기자는 게으르다. 그 어떤 수식어나 미사여구를 붙여도 숨길 수 없다. 기자는 매우 게으르다. 하기 싫은 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는 것이 기자의 습성이다. 그러니 신문사 생활을 하며 기자가 겪은 생고생은 어느 정도 기자 스스로 자처한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누구라도 어느 정도의 게으름은 부리지 않겠는가. 굳이 말하자면 애초에 그런 성격을 가지고 신문사에 자원한 것이 기자의 죄라면 죄일 것이다.


  그래, 기자의 가장 큰 잘못은 기자가 신문사를 너무 쉽게 보았다는 것이다. 신문사 생활은 무엇 하나 기자의 예상처럼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상치 못한 것은 인터뷰였다. 인터뷰라면 그저 마이크 들이대고 적당히 질문이나 몇 개 하는 줄 알던 기자의 생각과는 달리, 인터뷰는 지옥이었다. 온갖 곳에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해 사정사정해가며 인터뷰를 따내야 했다. 질문지 하나 만드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를 마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두서없는 구어체 답변을 일일이 정리해 깔끔하게 고쳐야 하고 인터뷰이의 발언을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처음 인터뷰 기사를 맡았을 때 기사는 신문사를 나가야겠다고 반쯤 결심했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것인가. 막상 인터뷰를 해보니 생각보다 인터뷰가 재미있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만날 생각도 못했던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그 모든 생고생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투덜거리면서도 신문사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는 그렇다 쳐도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어마어마한 업무량이다. 신문사는 기자가 적다. 매우 적다. 그런데도 매주 12면을 꽉꽉 채워 기사를 내보낸다. 그러니 간혹 무언가 꼬이기라도 하면 신문 1면을 거의 기자 혼자 채우다시피하는 경우도 있다. 실력이 늘기야 하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게 느는 것도 아니다. 매주 금요일 기사를 마감할 때마다 과로사하기 전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또 화요일 아침이 되면 이 망할 신문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따끈따끈한 새 신문을 펼쳤을 때 기자가 쓴 글이 눈앞을 가득 채우면 후회할걸 알면서도 또 금세 마음이 풀려 그동안의 고생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매주 금붕어처럼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하니 신문사가 정말 너무한 듯싶지 않은가.


뭐니 뭐니 해도 신문사의 가장 질 나쁜 점은 인간이다. 앞서 얘기한 여러 고생과 또 분량상 미처 말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고생을 함께 겪다 보면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같이 일하는 동료 모두에게 정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왜 나쁜 점이냐고? 이건 인질이나 다름없다. 신문사를 탈출하려 해도 남겨질 동료의 얼굴이 아른거려 도저히 신문사를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신문사가 이렇게 악랄한 수까지 동원해 기자를 묶어두니 어찌 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미워도 미워도 나갈 수 없는 이 죽일 놈의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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