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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말해주는 또 다른 신분증, 가발그 찰랑거리는 아름다움의 역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머릿속에 가발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모발~ 모발~’하며 진짜 머리처럼 감쪽같다고 말하는 가발 광고가 생각날 수도 있겠고, 언젠가 스티커 사진을 찍으면서 써봤던 형형색색의 다양한 가발이 생각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오늘날 가발의 모습은 모 아니면 도이다. 눈에 띄지 않거나, 시선을 사로잡거나. 가발은 우리가 원하는 외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치장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생활 가까운 곳에 가발이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의 발달에 따라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해짐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현시대만의 특권인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가발은 오랜 시간을 거쳐 인간과 동고동락하며 그 시대가 추구하던 미(美)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이다. 학창시절 호랑이 선생님의 숨겨진 비밀이었던 가발이 가진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자.
 
클레오파트라의 가발/출처: OCN
태양이 내린 역사의 시작: 고대 이집트
  
  인류가 가발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가발의 탄생은 고대 이집트 사회로부터 출발한다. 고대 이집트가 가발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아마 파라오의 정교한 가발이 머릿속에 떠오르리라. 고대 문명 중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보여주는 이집트는 가발 제작에서도 당시의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발을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자연환경 때문이었는데, 그들에게 가발은 오늘날의 모자처럼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였다. 이 당시의 가발은 머리와 캡 사이의 공간이 있는 구조로 머리에서 생기는 열이 빠져나가면서 바람이 들어와 시원한 효과를 주며 그 역할을 톡톡히 다했다. 때문에 가발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품이기도 했다. 다만 가발의 재료나 그 형태에서 가발을 쓰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상류층을 위한 가발은 인모를 재료로 다양한 금장식이 첨가된 화려한 형태가 특징이다. 비싼 인모를 살 수 없는 일반인들은 주로 모직으로 만들어진 짧은 형태의 가발을 사용했다. 이집트 가발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검은색이 많았다는 점인데, 이는 이집트인들이 강한 원색의 의복을 즐겨 입게 됨으로써 가발도 점차 진한 색으로 염색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출처:Daum 백과사전
황금빛을 꿈꾸던 사람들: 그리스·로마 시대

  어릴 적 즐겨 읽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되새겨보면 남신이나 여신의 머리색은 대부분 금발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인들이 금발을 아름답게 여겼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는데, 당시의 회화나 조각에 등장하는 제우스(Zeus)신이나 비너스(Venus)의 머리가 금발인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남녀 차이보다 신분 간의 차이로 가발의 모양이 결정되었던 고대 이집트와는 달리, 그리스·로마 시대에서는 성별에 따라 다른 모양의 가발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젊은 남성들의 경우 운동을 즐겼기 때문에 짧게 자르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노인들의 경우에는 머리를 길러 다양하게 땋아 묶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와 달리 여성의 머리 모양은 자연스럽게 풀어내리는 모양이 유행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발이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남성은 변장이나 대머리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던 반면, 여성의 가발은 모양과 색이 더욱 다양해졌다. 이를 위해 불에 달군 쇠를 이용하여 웨이브를 만들거나, 파우더를 뿌려 색을 바꾸기도 하였다.

 

루이 14세/출처:GETTY IMAGES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 가발을 써라: 바로크 시대

  17세기 초 프랑스 궁전에서 시작된 가발의 유행은 17세기 후반 무렵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처럼 유행의 시작이 상류층이었던 까닭은 당시 젊은 왕이었던 루이 13세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성들에게는 긴머리 가발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17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러프의 유행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자연스레 남성들의 머리 스타일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루이 14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길고 풍성한 가발이 착용되었다. 이러한 헤어스타일은 루이 14세가 선호하던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군복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고안된 형태이다. 당시의 가발은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이 어깨와 앞가슴 길이까지 늘어 떨어지는 모양으로 가발 자체의 크기와 무게가 상당하였기 때문에 가발을 착용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즉, 생계를 위해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던 귀족들만이 착용할 수 있었던 상류층만의 가발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모양과 상황에 따라 페리위그(periwig), 풀버텀 위그(pull-bottomed wig), 퍼루크(peruke) 등으로 구분하여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가발을 착용했다.

 

모차르트의 가발/출처:영화<나넬 모차르트>
가발의, 가발에 의한, 가발을 위한 시대: 로코코 시대

  이제까지 가발이 신분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면, 18세기 로코코 시대까지의 남성의 가발은 계급뿐만 아니라 직업까지 구분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 이 시대는 가발이 장식적인 역할을 넘어 공식적 복장의 일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궁중 음악가이다. 모차르트, 바흐, 하이덴 등 음악가의 헤어스타일을 살펴보면 짧은 머리에 단정한 원통 모양의 부분 가발이 붙여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재판관 역시 가발과 친분이 두터운 직업이었는데, 과거 야외에 지어졌던 영국의 법정은 천정이 높아 매우 추웠기 때문에 당시 나이가 지긋했던 대머리 법관들이 추위를 피하고자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까지도 귀족제도가 남아있는 영국에서는 법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판사가 가발을 쓰고 재판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 시대의 가발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화려하고 복잡한 모양새를 뽐냈는데, 이 때문에 당시의 사회 풍자화에는 가발을 만들기 위하여 사다리를 타고 손질하는 모습과 같이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가발에 대한 풍자가 빠지지 않았다.
 
미인도/한국학중앙연구원
아름다움을 더하다: 한국의 가체

  서양의 가발이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로 사용되었다면 동양에서 가발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꾸미개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왕후의 머리치장과 가발을 담당하는 ‘퇴사(退師)’라는 직업이 존재했다고 기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찍이 가발을 사용한 민족이었는데, 체발(剃髮), 얹은머리(於由味), 가체(加剃), 가결(假結) 등 다양한 용어로 명명되어왔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같은 문헌에 의하면 머리숱이 적은 여인들이 다리(月子)를 달아 쪽을 진 것이 가발의 시초였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시대 궁중 여인의 화려한 가체는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왕실 비빈, 귀족 부인, 궁중여관 등이 가체머리에 부챗살 모양의 머리 장식을 꾸미는 형태의 풍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자 부녀자들에게 가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수 장식품이 되었다. 그 당시 여인의 가체는 높으면 높을수록 아름다운 것이었다. 즉, 가체의 크기가 당시 여성들의 신분을 보여주는 셈이었던 것이다. 후에 영조가 가체의 인기가 걷잡을 수 없이 성행하자 사치를 금하기 위한 가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가발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발을 쓰고 있는 그 사람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신분증이었다. 오늘날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가발만큼 시대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련된 신분증이 또 있을까.
 
참고자료:
『만물의 유래사 (인류와 함께 한 문명의 모든 것들에 관한 숨은 역사)』, 하늘연못, 2004, 430p
박장순,「세대별 가발 착용 실태 및 인식에 대한 연구 : 경기도 평택시 거주 남성형 탈모인을 중심으로」, 송원대학교 뷰티예술학과, 2015
네이버 지식백과 '가발'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 역사비평사, 1999, 314p

윤예본 기자  yoon9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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