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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의 동심을 두드리다.김상진 애니메이터

어두운 영화관에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색으로 우리들의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눈동자 속 찰나의 반짝임까지 감탄스럽기 그지없는 이 모든 것들은 하얀 종이 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그의 손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애니메이션의 본고장에서 사람들의 동심을 지키는 피터팬이 되어 돌아온 그는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일이 즐거울 뿐이다. ‘엘사 아버지’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아티스트’와 같은 수식어보다도 이름 앞에 ‘애니메이터’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피터팬 김상진 애니메이터를 만나보았다.

Q. 최근작 <모아나(Moana)>(2016)를 작업할 때는 16살 주인공의 모습을 위해 딸의 사진을 많이 참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 캐릭터를 만들 때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A. 보통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참고서는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한 배우의 이미지이다. 아무래도 배우의 목소리와 이미지가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다음이 캐릭터의 나이 또래와 비슷하나 성격에 맞는 다른 배우,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인물이다. 만약 친구 중에 이 캐릭터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제스처라던지, 말투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참고하기도 한다.

베이비 모아나의 경우에는 딸아이의 사진을 많이 참고했는데, 극 중 모아나의 꼬불거리는 머리 스타일이 어릴 적 딸의 모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인 모아나의 경우는 목소리에 캐스팅된 배우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보통 캐릭터를 디자인하기 시작할 때 목소리 배우가 캐스팅되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참고하기 좋다. 영화 <모아나>의 남자주인공인 마우이 캐릭터에는 목소리를 연기한 드웨인 존슨의 특징이 많이 녹아 들어가 있다. 그 사람의 입가 주름이라든지, 눈가의 움직임, 특유의 표정이 마우이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마더 고델’ 스케치 (출처: Walt Disney Studios Pictures)

Q. <환타지아2000(Fantasia/2000)>(1999)부터 <겨울왕국(Frozen)>(2013), <볼트(Bolt)>(2008), <라푼젤(Tangled)>(2010) 등 다수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면서 수많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A. 내 사무실 책장을 보면 ‘Tangled’라고 쓰여 있는 박스가 여러 개 있다. 한국에서는 <라푼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인데, 마녀로 나오는 주인공의 의붓엄마 ‘마더 고델’ 캐릭터가 가장 애착이 간다. 주인공보다는 악당이 애니메이션 하기에 더 재미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마더 고델은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단 모든 캐릭터가 딱 한 가지 버전으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남자주인공 플린의 경우에는 2~3가지의 버전이 있었다. 그런데 마더 고델의 경우에는 5~6개 정도의 다른 버전이 있었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한 캐릭터이다. 캐릭터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와중에 지금의 마더 고델과 이미지가 매우 비슷한 아내의 친구가 떠올랐다. 마더 고델과 머리 스타일도 굉장히 비슷했는데, 그 친구를 참고하기 시작했더니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던 기억이 있다.

최종 버전 이외에 선택되지 않은 다른 버전들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열심히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가 통째로 취소된 경우에는 굉장히 아쉽다. 그런 경우에는 스튜디오도 아티스트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던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트북에도 남기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선보이지도 못한다. 물론 그러다가 몇 년 뒤에 재정비해서 다시 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게 바로 <겨울왕국>이었다.

▲영화<빨간구두와 일곱난쟁이>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Q. 멘토링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겠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분야의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강연을 꾸준히 하는 것 같다. 강연에서 매번 잊지 않고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A.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서 일정이 맞으면 몇 번 나가기는 했는데, 너무 바빠서 모든 의뢰에 응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주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스튜디오 차원에서도, 아티스트 차원에서도 금방 후다닥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작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몇 년을 매달리고 있는 이 직업은 인내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취업준비생, 학생들을 만나보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디즈니 갈 수 있어요?’이다. 그런데 그건 내가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다. 다만 이 질문을 받을 때면 그 친구들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아 나도 빨리 학교 졸업해서 디즈니나, 픽사나, 드림웍스 같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 이런 것이다. 물론 졸업을 앞둔 학생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매우 드문 경우이다. 나를 예로 드는 것이 조금 웃길 수는 있지만, 내가 디즈니에 들어갔을 당시의 나이가 서른여섯이었다. 이 일을 평생 할 생각이라면 조금만 느긋하게 마음먹었으면 좋겠다. 멀리 보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해있지 않겠나.

Q. ‘LOCUS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그간 애니메이터로서 경험한 모든 내공을 발휘하고 있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내년 여름부터 겨울 사이에 개봉 시기를 고민하고 있는 <빨간 구두와 일곱 난쟁이 (Red Shoes & the 7 Dwarfs)>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스토리 공모전 대상을 받고 2010년에 제작에 돌입한 작품인데, 개발 초기부터 미국에서 조금씩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일 년 반 전부터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함께 작업 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는 극장용으로 제작되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해본 아티스트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디즈니에서 쌓은 경험 같은 것들을 후배들과 공유하면서 영화를 제작 중이다. 애니메이션을 혼자 만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애니메이션에 내가 가진 경험이 더해진다면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많이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더 큰 보람을 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라푼젤의 마더 고델이 그랬듯 말이다.

▲영화<겨울왕국>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Q. “아이들이 보는 영화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전 세대가 볼 수 있는 토종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라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최근 아이들과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어른들을 일컫는 ‘키덜트 열풍’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A. 월드 디즈니가 처음 회사를 세우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했던 많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특히 어른들의 마음속에 동심을 일깨워주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러니까 키덜트는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다만 어른들이 극장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싸게 만든 질 나쁜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한몫했다. 너무 많은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핑계로 대충, 성의 없이 제작된다. 아이들이 무슨 퀄리티를 따지겠냐는 어른들의 형편없는 생각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저런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거지’하는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겨울왕국>이 그 편견을 깨고 다시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본질 중의 하나인 ‘함께 보는 영화’를 실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도 더 좋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 됐으면 좋겠다.

윤예본 기자  yoon9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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