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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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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단순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름 치열하고 복잡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내 삶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지금은 누구나 이름을 말하면 아는 대학교의 유명 학과를 재학하고 있어, 모두들 나의 과거는 모른 채 치열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거나, 모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가 축구를 하고, 땀을 흘린 채 씻지도 않고 야자를 하던 그 시절이 말이다. 때로는 그것보다 오래된 과거를 떠올린다. 아무도 나에게 공부를 권하지 않던, 경쟁을 가르치지 않던 오직 축구와 집뿐이던 시절. 이런 과거를 가진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어떻게 지금의 학교에 왔는지를 묻는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니면 천재라서? 모두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그다지 공부에 흥미가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을 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을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나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랬기 때문이다. 진로는 커녕 당장 눈앞의 시험에 대한 계획도 없었고,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공부하는 척을 했다. 다만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런 짓들이 금방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반 친구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만 할 때, 나는 이미 노는 것을 통한 쾌락에 지겨움을 느꼈다. 한낱 고등학생이 유희에서 지겨움을 느꼈을 때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학생 신분에서의 일탈 혹은 공부를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일탈의 유혹을 단박에 버릴 수는 없었다. 밤마다 나가서 놀고 PC방을 갔으며 때로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격상 위험한 것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일탈의 길로 몸을 틀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부를 즐기게 되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유희에서 오는 쾌락을 어찌 이겨낼 수 있냐고. 하지만 나 역시 믿기지 않게 배움의 철학과 기쁨에 더 흥미를 느꼈다. 공부를 즐겼고, 놀면서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본교에 입학도 했다. 그럼 이 생활을 쭉 유지 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성인의 권리와 청소년만이 받는 법의 보호와 자유를 얻은 이 신입생은 다시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지 못하자, 급격히 나태해졌다. 잠깐 치열함의 맛을 보는가 싶었는데, 금방 다시 단순해진 것이다. 


사실 여기서 깨달았다. 이러한 생활은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고등학교라는 작은 우물 속에서의 단순한 삶을 나의 전부인 것 마냥 여기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로 나오자마자 치열하고도 복잡한 삶으로의 도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내가 이런 나태한 삶을 살 때에도 다른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미 그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보니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곤 나 역시 치열한 삶을 살아보자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에게는 시간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뒤돌아보고, 또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이 열리고 길이 보였다. 미숙하게나마 관심이 있는 예술과 철학을 배우고, 다양한 교내 생활로 뛰어 들었다. 예술을 배우고자 했던 나의 생각은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수업은 재밌었고, 여태껏 주입식으로 받아왔던 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철학적이고 고전적인 강의에 놀라기도 했지만,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교내 활동도 시작했다. 동아리, 과내 소모임, 학교 방송국 등 여러 활동을 했다.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새로운 경험이나 나의 능력보다도 경쟁 속에서의 협동의 중요성이었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였던 나는 동기들과 같이 연습하고 경쟁하며 배워나갔다. 당장 눈앞의 목표는 보이지 않더라도 큰 꿈은 보였다. 


길게 글을 늘였지만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큰 교훈은 나태의 반성과 경쟁의 기쁨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나에겐 경쟁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고, 굳이 느끼려 하지 않았다. 이미 누리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겼으니까. 하지만 우물 밖에서 나와 여러 활동을 하고, 교육을 하며 느낀 점은 치열한 경쟁, 혹은 투박하더라도 나와의 다툼을 통한 성장만이 단순한 유희에서 오는 쾌락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준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많은 길을 걷고, 나아갈 것이다. 많은 일이 생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이 설레고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쩌면 허물없는 친구가 생길 것 같은 기대라기보다는 새로운 사람과의 알 듯 모르는 경쟁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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