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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에 맞서 살아가는 혼혈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낸, 『이태원 아이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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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외국인을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본 적이 있는가? 요즘은 어디서나 쉽게 외국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차례 전쟁을 겪은 1960년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긴 전쟁을 겪은 탓인지 그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외국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두려운대상이자 경계심을 가져야 할 존재였다. 데이비드 L. 메스의 『이태원 아이들』은 그러한 1960년대, 암울한 시기에 온갖 수모와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혼혈 아이들의 여정을 그려냈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지만, 모든 행운과 희망을 스스로 개척한 주인공 병석이의 이야기를 따라 기자는 이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태원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흉터다. 오래전에 상처입었다 치유되었다 다시 상처가 터지면서 보기 싫은 흉 터로 남아 고스란히 모두의 눈에 띄는 그런 상처 자국.

 

지하철에서 내려 목적지인 이태원역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길, 수많은 외국인들을 보았다. 히잡을 두른 여성들과 노래를 듣는 흑인 남성, 그리고 신문인지 잡지인지 모를 책을 무척이나 집중해서 읽고 있는 멕시칸 할아버지까지… ‘정말 여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구나.’ 이태원에 첫 발을 내딛으며 기자가 느낀 것이다. 이곳은 카메라를 메고 서있는 기자보다도 분명 저 외국인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장소였다. 서울의 중심부인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태원은 낯선 외국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소설 『이태원 아이들』에서 이태원은 도시의 보기 싫은 ‘흉터’로 묘사된다. 흉터는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그 부위가 곪아 남게되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작가가 이곳을 흉터로 묘사한 것은 바로 병석과 같은 아이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는 흉터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태원은 이국적인 맛집과 유명한 거리들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변하게 되었다. 변한 거리에서 아이들의 상처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던 중 기자는 오래된 도로와 가정집, 그리고 해석할 수 없는 간판들이 걸린 로컬 상점들을 보게 되었다.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드러나는 한적한 거리에 소설 속 존재하는 이태원의 옛 골목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걷다보면 이태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가 펼쳐진다.

 

한 노파가 가는 끈으로 아기 탯줄을 묶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생기를 불어넣은 뒤 병석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찰싹하 고 때리던 노파의 손길은 앞으로 병석에게 찾아올 무수한 손찌검 중 첫 번째 것이 되었다.

 

병석은 축축하고 한기어린 이태원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창녀였다. 죽은 엄마의 곁에서 힘겹게 울고있는 갓난 흑인 혼혈 아기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지나가던 노파의 손길에 아이는 겨우 살아난다. 노파는 아이에게 병석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던 사람들은 병석의 피부색을 보고 이태원에서 만난 흑인 미군이 그의 아버지일 것이라며 추측했다. 사람들은 그 새 생명을 환영하지 않았다. 대신 욕지기를 퍼부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라온 병석이지만, 그는 시선에 굴하지 않고 굴곡진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옛 골목길을 걸으며 이태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정신없이 담다보니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에는 낡고 어두운 건물들이 가득하고, 간혹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닫지않는 이 거리가 왠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진 것이다. ‘여기서 갑자기 누가 나타나면 어쩌지?’라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 뉴스에서 보았던 외국인 칼부림 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서둘러 큰길로 되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기자 앞에 인도 혹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세 청년들이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사진 찍어요? 우리도 같이 찍어요!” 분명 그들은 친근함을 표현한 것이었을 텐데 두려운 마음이 커 그만 그들에게서 도망치듯 신호등을 건너고 말았다. 건너편에서 서운한지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결국 기자도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유없이 그들을 멀리 하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뒤돌아 갔지만 기자는 미안함에 기분이 머쓱해졌다.

우재는 계속 비누칠을 해주고 때를 밀어 준 다음 함부로 엉켜 붙어 버린 머리 다발도 잘라주었다. 병석은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혼혈인 미희를 만나 서로 남매처럼 의지하고 지내던 병석은 이태원의 한 여관에서 일하게 된다. 아버지를 찾으러 미국에 가겠다고 결심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스스로 ‘조 윈터’라는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 그 이름을 제대로 발음조차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미국에 가면 사용할지도 모르기에 병석은 그 이름을 가슴 깊이 새긴다. 아버지가 있는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 할 삶을 떠올리며 병석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여관 주인인 우재는 그런 병석에게 포근한 안식처를 내어주고 정성껏 보살펴준다. 세상에 버림받고 그 누구에게도 챙김을 받지 못했던 병석은 낯선 따스함에 눈물을 흘린다. 지금도 우리 곁에는 병석과 미희같이 세 상의 차별을 힘들게 견뎌내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태원 아이들』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단지 1960년대 한국의 냉소적인 단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을 사회 구성원이 아닌 ‘이방인’으로 여기는 모습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 우재 아저씨와 같은 따뜻한 사람이 되자 생각하면서도 행동에 옮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혼혈아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더 심하게 그들을 내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관심’이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무관심했던 것 같다. 이번 보따리를 통해 직접 이태원 거리를 걸어보며 기자는 많 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색안경을 벗어던지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으며, 맛있는 것을 먹고 재밌게 놀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이태원의 ‘민낯’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태원역을 떠나기 전, 이슬람사원 앞에서 만났던 환하게 미소 짓는 외국 아이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아이들은 저 골목 어딘가에 미희와 함께 서있을 것만 같은 기자의 상상 속 병석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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