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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빛깔
  • 조성호(커뮤니케이션디자인2) 학우
  • 승인 2017.1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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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빛깔’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빛깔은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색(色)을 의미함과 동시에 심리적인 성격을 뜻하는 ‘깔’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빛깔은 사물의 여러 가지 의미를 표현하는 체계이다. 시각적으로 색을 인식하는 것은 대부분 같지만, ‘깔’은 색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같은 파란색을 두고도 청명한 하늘을 떠올리며 상쾌함을 느끼는가 하면, 상한 음식의 곰팡이를 떠올리며 불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사고 과정을 통해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감각을 넘어선다. 한 소설 작가가 말했던 ‘햇빛이 바삭바삭하다.’라는 표현도 빛깔의 의미를 잘 표현한 예이다.


근래의 인물사진 작가 중 빛깔을 잘 풀어내는 작가를 한번 소개해볼까 한다. 이 작가는 촬영 대상자와 소통하고 대상에게 어울리는 색과 분위기를 연출하여 증명사진을 구성한다. 이 작가의 증명사진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배경지를 사용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취하며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것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느꼈다. 증명사진만큼 변화가 더디었던 분야는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발명 초기의 증명사진을 살펴보면 거의 획일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귀족들의 집을 인공적인 방법으로 모방한 고풍스러운 배경을 연출하여 난간에 기대어 서서 여유 섞인 미소를 띠며 중절모를 걸치곤 한다. 오늘날에도 이력서에 넣을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대부분 정장을 입고 가벼운 미소를 보이곤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회적인 자기연출일 뿐, 자신에게 어울리는 빛깔을 찾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빛깔을 확장해보자. 사람이 어떤 빛깔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자신의 빛깔에서 반사된 빛이 사물을 비추기 때문이다. 조명의 광량에 따라 사물의 모습은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표현되기도 하듯 빛깔 속에서의 관계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빛깔을 확장하지 못한다면 자칫 단조로운 빛깔에 갇혀 시야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2002)에서는 개인의 감정을 철저하게 제약하는 통제정부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시민이나 도시의 모습에서 빛깔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민들은 감정을 느낄만한 대상조차 없다. 자신의 빛깔이 다른 사물을 비추기에 충분하지 않게 된다. 영화 속에서 감정을 잃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미술품, 음악, 애완동물 등의 감정을 일으키는 물건들을 계속 소장하며 정부에 맞서곤 한다.


디자이너를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빛을 다루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며 빛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처음에는 무작정 색을 섞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아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에세이 「가을의 빛깔들」에서 “모든 나무와 모든 관목, 모든 풀 하나하나마다 그것이 푸른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식물 특유의 가장 선명한 색을 띠었을 때 잎 하나를 표본으로 채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잎의 윤곽을 그린 다음, 물감으로 그 색을 정확하게 표현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 책은 얼마나 멋진 기념품이 되겠는가? 아무 때나 책장을 들추기만 해도 가을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한 대상을 집중하여 깊이 파보기도 한다. 또한 타 작가의 많은 작품들을 보고, 나만의 생각으로 해석해 작가의 생각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자신의 빛깔이 충분히 쌓여 있을 때, 저마다의 생각으로 빛을 구성하여 작품의 ‘깔’을 만든다. 전혀 다른 빛깔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에는 자신의 빛깔이 묻어 나온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 속 작품에서부터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 빛깔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의 빛깔을 버리는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또한 감당할 만큼의 빛깔을 사용해야 한다. 빛깔은 화려함만으로 풍요로움을 주지 않는다. 농익은 색감, 과일과 곡식이 익어가듯 색도 성숙함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나만의 빛깔을 찾는 과정 중에 있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다양한 빛깔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나를 비춰보고, 소통하며 내 자신의 새로운 빛깔을 발견하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자신의 빛깔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빛깔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조성호(커뮤니케이션디자인2)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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