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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과 도시 사이(2)현대 건축의 이해
  •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7.05.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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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을 디자인해야하는 건축

  여기에 더 나아가서 건축은 3차원을 디자인 하는 것이 아니라 4차원을 디자인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그래픽디자인은 전형적인 2차원 평면의 디자인이다. 핸드폰이나 자동차는 3차원 오브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건축 역시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질량과 부피를 가지고 있는 3차원의 디자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고 건축물은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살아남는다. 심지어 인간의 수명보다 더 길게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낡은 자동차와 핸드폰은 버려진다. 하지만 건축은 버려지기에는 너무 고가의 제품이다. 고가의 제품은 고쳐 쓰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시간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3차원의 물질위에 덧씌워지게 된다. 그래서 건축은 3차원 건축물에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이 합쳐진 4차원의 물질이다. 우리는 어찌 보면 우리 존재보다 더 높은 차원을 디자인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른 기능으로 생존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을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시대를 초월해서 자신의 모습을 진화시키면서 살아남는 건축을 우리는 부활하는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활하는 건축

  건축의 역사를 살펴보면 건축의 발전이 구축기술 및 재료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다른 기술 및 사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례로 근대에 산업혁명이후에 사람들이 시카고에 몰려들어 살게 되었다. 도시화와 고밀화가 필요한 시점에 때 마침 현대식 승강기가 발명되었다. 동시에 철골구조기술이 개발되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었고, 공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이러한 제품을 사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최초의 백화점은 많은 제품을 전시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접근 할 수 있는 도심에 위치해야 했기 때문에 철골구조로 고층건물을 만들고 기둥간격이 넓어진 입면에 유리창을 넣어서 제품을 전시할 수 있는 쇼윈도를 만들었다.

  한 시대의 기술과 사회발전에 의해서 새로운 건축이 발생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공장건물일 것이다. 예전에는 옷감을 짜기 위해서는 아녀자가 집에 앉아서 베틀에 앉아서 혼자서 옷감을 짰다. 베틀과 한사람이 들어갈 공간은 작은 공간이다. 따라서 그냥 집안의 작은 방에서 일을 하면 되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때 방적기계가 발명이 된 이후 이야기가 달라진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방적기계는 그 크기가 일반 베틀 보다 훨씬 컸다. 이를 놓기 위해서 건축가는 기둥과 기둥 사이가 넓은 큰 공간을 빠른 시간에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대형 스팬의 공간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기술은 그 시대에 나오기 시작한 주철로 만든 트러스 구조였다. 따라서 벽돌이나 돌로 만든 기둥과 아치 대신에 주철로 만든 트러스 구조의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처럼 건축은 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인 요구와 새로운 해답을 줄 수 있는 기술력 사이에서 탄생한다.

  기술개발과 건축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좋은 예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의 작품들이 가장 많이 전시가 되어있는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미술관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디자인 된 건축물은 아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예전에 기차역이었다. 기차역이라는 건축물 역시 마차로 이동하던 시대에서 산업혁명시절에 증기기관차라는 것이 발명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이다. 마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고 대중이 이용하면서 공항이라는 건축양식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다. 오르세 기차역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증기기관의 힘이 약해서 하나의 기관차가 객차 8개를 끌 수가 있었다. 따라서 오르세 기차역에는 객차 8칸이 들어갈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달하여 기관차의 힘이 세어지면서 기관차는 객차를 11칸까지 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르세 기차역의 플랫폼이 8칸에 맞게 건축이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짧은 플랫폼으로 인해서 오르세 기차역은 역으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기 힘들어졌다.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서 파리 다른 곳에 새롭게 건축된 기차역에 밀려 사용되지 않는 건물이 된 것이다. 이렇게 버려졌던 오르세 기차역은 시대가 바뀌어서 20세기에 오면서 시민이라는 계층이 미술품을 보고 싶어 하는 계층으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된다. 예전에는 미술품이라는 것은 왕이나 귀족들이 화가를 고용해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자기 집에 걸어놓는 시스템이었다. 이처럼 그림은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민사회에 들어오게 되면서 시민들은 자신들도 과거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미술품 감상을 원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건축프로그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 정부는 버려진 오르세 기차역을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건축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이처럼 건축은 시대적 요구와 기술에 의해서 탄생하게 되고, 시대가 변하면서 죽게 되고, 또 다시 시대가 변하면서 부활하게 되기도 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건축물의 탄생, 성장, 죽음, 부활의 사이클을 잘 보여준다.

운영방식과 디자인

  우리는 앞서서 건축물이 기술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하는 가를 살펴보았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는 통시적인 관점에서의 건축디자인을 살펴본 것이라면, 이번에는 기능에 의해서 어떻게 도시공간이 디자인 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유럽의 도시를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이 있다. 그것을 보통 두오모라고 부른다. 그러한 두오모 앞에는 예외 없이 성당의 길이와 같은 크기의 광장이 위치해 있다. 이러한 반복되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일단 성당이 만들어지기 전의 도시를 상상해보자. 허허 벌판에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형국이었을 것이다. 교황이나 왕이 대성당의 건립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밀라노의 대성당을 짓기로 했다고 하자. 성당을 짓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돌을 가공해야하고 그 돌을 야적할 공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큰 공간은 당연히 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바로 앞마당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일을 했을 것이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먹고 잘 수 있는 식당과 주거시설들이 그 앞마당 주변으로 배치가 되었을 것이다. 공사가 완공되고 난 후에는 앞마당의 사람들은 철수하게 되고 그 자리는 대성당 앞의 광장으로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 광장 주변으로는 식당가 상가가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 부분이 도시의 중심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문점은 왜 그 빈 앞마당에 공사가 끝이 난 다음에 다른 작은 규모의 건물들로 채워지지 않았을까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예배”의 운영방식으로 설명될수 있을 것이다. 성당이라는 공간은 일요일에 그 안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활자가 없던 시절에 성경책을 모든 사람들이 가질수 없었다. 그 외에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신앙이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서 성경말씀의 낭독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그 도시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같이 드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동시에 예배당에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때 예배당 앞에 광장이 없다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디에서 받아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예배당 앞의 광장은 예배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받아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당 앞의 광장은 성당의 평면과 같은 크기의 규모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기차역 앞의 광장의 크기도 기차가 도착했을 때 쏟아져 나오는 인파의 규모와 연관되어있다. 서울역 앞의 광장도 그렇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 이렇듯 건축과 도시공간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기술과 건축물이 사용되는 운영방식, 사람들의 삶의 모습 등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시간이 흘러 그 모양과 쓰임새가 변화되고 시간의 흔적을 온몸으로 담아내면서 비로소 건축이 되는 것이다.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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