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만 있나? 자국 혐오주의로 전개되는 ‘국까’의 등장한국 사회, 양극단의 국가관으로 골머리 앓아무조건적으로 애국심을 강조하고 조장하는 것을 국뽕이라 한다면, 이와 반대로 애국적 요소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현상을 ‘국까’라고 한다. ‘국가주의’와 ‘-을 까다’의 합성어인 국까는 초기에는 국뽕의 반작용으로서 인터넷상에서 애국심을 조장하는 현상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까는 국가를 긍정적으로 나타내는 것에 반발하고, 심지어는 국가와 자국민을 부정하는 뜻으로 확장되며 변질됐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 자국 스포츠 선
“는 국뽕 영화가 아니다.” 이는 류승완 감독이 지난 7월 개봉한 자신의 영화(2017)에 대해 애국심을 자극하여 흥행을 노리는 국뽕 영화가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한 말이다.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국뽕 영화가 아니라고 미리 못 박을 정도로 ‘국뽕 영화’라는 꼬리표는 어느새 대중들과 예술가에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자 ‘작품성을 배제하고 애국주의에 치중한 영화’라는 뜻으로 인식되기 시작됐다. 비슷한 예로 1,700만 명의 관객이라는 한국 영화사상 최고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2014)은 명량
KBS 드라마 (2013)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라면 손꼽아 기다리는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자발적 비정규직’을 고수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회사가 고용 여부를 좌우하는 것이 아닌, 근로자가 스스로 이를 선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생활의 전반을 바꾸어 놓았고 그 변화의 손길은 기술의 발전을 넘어 생산구조와 고용구조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소위 말하는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고용시장의 주인공을 차지했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때와 필요에 따라, 필요에 맞는 사람을
그리 먼 과거도 아닐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하철 역 안 곳곳에서 신문을 사는 사람들과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하철, 버스 등에서 종이로 된 신문, 잡지, 책을 읽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아니며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스마트폰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책과 신문을 읽지 않는 것일까? 그런 것은 또 아니다. 접근하는 매체가 달라졌을 뿐, 그들은 여전히 뉴스를 읽고 책을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한 가지는 바로 종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함께 역사
생사의 갈림길에 선 종이신문, 진퇴양난에 빠지다종이신문을 읽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줄어든다 지금 여러분은 이 기사를 무엇으로 읽고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자. 본지는 2016년까지 종이 신문만을 발간하다가 2017년부터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동일한 기사를 지면과 웹상에 싣고 있다. 이 사실을 인지했다면 신문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가판대에 놓인 종이신문보다는 언제, 어디서든 볼수 있는 디지털 신문을 먼저 접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거의 유일한 언론매체로서 사회적 소통의 창구였던 종이신문마저도 그 존폐를 놓고 저울질하는 시대가 온
서울의 도심 속에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위에 귀를 기울이면 심심치 않게 색다른 언어가 들려올 것이다. 한국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아시아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사회에서 그 위치를 견고히 하고 있다. 이처럼 높아진 위상만큼 한국에 대한 호기심 외에도 학문, 여행 등 다양한 이유로 방한하는 외국인의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도시개발은 ‘서울’에만 초점이 맞춰져 중소 도시들은 서울만큼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의 발걸음은 서울로 향하게 되었고 그 외의 중소 도
바야흐로 ‘여론조사의 시대’이다. 판촉을 위해 고객의 의견을 묻는다는 기업부터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알려준다는 일간 신문과 저녁 시간 뉴스방송까지 더 이상 통계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복잡한 학문이 아닌,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우리의 삶에 자리 잡았다. 이렇듯 사회 전체에서 일부를 적절히 선택해 의견을 물어 통계를 낸 ‘여론조사’는 글에 힘을 실어주고, 사람들에게 현재 사회의 분위기를 쉽게 알려주는 손쉬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외의 여론조사는 실제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이며 연전연패(連戰連敗)를 기록
고되고 긴 입시 시간을 지나 얻어낸 대학합격증은 학창시절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반가운 존재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대학교에서 쥐어준 또 다른 문서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쁨과 설렘도 사라지게 하고 만다. 바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적힌 ‘등록금 납부 고지서’.값비싼 등록금은 오롯이 대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짐이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언제부터 대학생들은 등록금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을까? 높은 등록금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학과 정부의 대책과 그 실효성 그리고 더 나아가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수십 년간 견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등록금 장벽, 그 시작은?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정부의 정책에서 찾아낸 높은 등록금의 출처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한마디로 비싸다. 학생들은 학업을 위해 높은 등록금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장벽은 금색의 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단숨에 훌쩍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고, ‘반값등록금’과 같은 몇 마디 외침으로 부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견고하다. 누군가는 이를 뛰어넘지 못해 장벽 앞에 자신의 꿈을 내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몇 년에 걸쳐 꾸역 꾸역 이를 넘으려 애쓴다. 많은
때로는 백 마디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진솔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크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또 우리는 꾸며낼 수 있는 말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나는 표정을 신뢰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사람들은 모니터의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상대에게 표정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문자(文字) 속에 자신의 표정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모티콘이 이제 세상을 휩쓸고 있다. 미국 기업소식 전문지 「애드위크(Adweek)」가 2015년 공개한 설문조사에서 연령을 막론하고 ‘하루 수차례 이모티콘을 쓴다’라고 답한 이